2010년 3월 16일 화요일

[펌]양은모, 양은성 공신 남매 이야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부모는 환경조성 역할만

양은모(21), 양은성(19) 남매는 영재들이 모인 민사고에서도 공부 잘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수재로 꼽혔다. 2년 전 민사고를 졸업해 현재 스탠퍼드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양은모씨는 고교 재학 당시 AP(대학과목선이수제) 성적우수로 인터내셔널 칼리지보드에서 주는 최우수상을 받았을 만큼 성적이 좋았다. 삼성장학생으로 선발돼 학비와 체류비 일체를 지원받고 있다. 양은성양 역시 올해 모든 과목 A학점으로 전체 1등을 기록하며 졸업했다. 올해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그는 예일대를 수시(Early)로 합격한 상태다. 이들이 유명한 공신남매가 되기까지는 본인들의 노력 못지않게 어머니 이미경(45)씨의 공도 한몫했다. 이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두 아이 모두 네 살쯤 한글을 깨쳤는데 그 뒤로부터는 손에서 책을 안 놓을 정도로 책에 빠졌어요.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범상치 않다고 여겼죠. 뛰어난 잠재력을 살려주기 위해 고심하고 행동으로 옮긴 결과 두 아이 모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어요."


◆ 시기에 맞게 엄마 역할을 바꾸다

대학에서 교육심리를 전공한 이씨는 자녀 교육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서는 열 일을 제쳐놓고 자녀교육 강의에 찾아다닐 만큼 열성이었다. 자녀를 잘 지도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강의를 들으면서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존중하는 방법, 있는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는 법 등을 배웠고 두 아이를 대할 때마다 배운 것을 늘 떠올렸다"고 말했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이씨는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이길 자처했다. 늘 아이들과 함께 다니며 즐기기를 좋아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주고자 전시회나 박물관, 공연장에 함께 다녔고 종종 여행도 떠났다. 특히 은모군이 초등 5학년, 은성양이 초등 3학년 무렵 캐나다로 건너가 1년 7개월간 살았을 때는 한시도 아이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휴일이면 늘 도서관에 함께 다니며 책을 읽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길 좋아했지만 단 한 번도 공부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은성양의 얘기다.

"부모님은 한 번도 성적표를 보여달라거나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성적에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셨죠. 초등 때까지는 공부보다는 가족 간의 추억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비뇨기과 전문의이신 아버지가 지방에서 하는 학회를 참석할 때면 저랑 오빠는 학교를 빠져서라도 온 가족이 여행을 함께 떠났지요"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대치동에 터를 잡고 나서는 이씨의 역할이 철저히 달라졌다. 아이들의 학습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은모가 어느 날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어요. 선행학습을 한 덕분에 실력이 좋은 친구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때까지 사교육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기에 은모가 받는 위기의식이 예상보다 컸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지요. 상황이 달라진 만큼 적응할 때까지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자고 결심했어요. 그때부터 두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수소문하고 아이 스케줄에 맞게 로드매니저 역할을 했죠. 아이에게 필요한 것과 부족한 부분을 미리 살피면서 보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심리적인 안정을 주고자 봉사활동도 함께 했다. 방학 때면 캄보디아, 네팔 등지로 온가족이 의료봉사를 떠났다. 은성양은 "오지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두 아이가 민사고에 입학하고 나서는 격려자로 변신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방학 때마다 집에 돌아올 때면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자 배려했다. 학기중에는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휴식을 느끼게 해주려는 의도였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해줬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학습력이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마음이 안정돼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고 여겼지요.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며, 아이들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고 열심히 나아가면 곁에서 응원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나야 해요. 재촉하거나 채근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죠."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게 하라.

이씨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사교육 일 번지' 대치동에 정착했을 때로 기억한다.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 때문에 적지 않이 마음 고생을 한 남매를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주변의 온갖 사교육 정보들을 접하면서 혼란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씨는 한발 물러나 여유롭게 행동했다.

"대치동에 오면 학원이 많은 데다 갖가지 사교육을 시키는 엄마들이 적지 않아 부화뇌동하기 쉽죠. 부모의 욕심 때문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급함을 버리고 저보다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했지요"

학원을 선택할 때는 철저히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했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라고 입소문이 났다고 해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보내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한 곳을 오래 보냈다. 또한 사교육을 많이 시키지도 않았다. 부족한 과목에 한해 몇 과목만 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혼자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학원 선택을 스스로 했기에 부담이 없었다고 말하는 은성양은 "웬만한 대치동 아이들이라면 응시하는 올림피아드 준비도 특별히 하지 않아 여유시간이 많았다. 남는 시간을 오로지 학교 공부에 투자한 결과 최상위권 내신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사고를 지원한 것도 전적으로 아이들의 의사였다. 은모씨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민사고에서 열린 캠프에 참가하고 나서 민사고 진학을 꿈꿨던 것. 목표를 향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를 이씨는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줬다. 오빠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은성양 역시 일찍부터 민사고를 목표로 공부에 매진했다.

이씨는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엄마부터 중심을 잡아야 한다. 아이를 귀하게 여기고 의사를 존중해줘라"고 충고했다.


-출처 : 방종임 맛있는공부 기자 bangj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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