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9일 월요일
아기 살리고 죽음 선택한 30대 女변호사의 母情
19일 ‘뉴질랜드해럴드’에 따르면 유명 여성 변호사 졸렌 파투아와 투이라베(33)는 아들 루이를 낳은 지 10주 뒤인 지난달 26일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06년 유방암을 이겨냈던 투이라베는 루이의 임신 직후 암이 재발하면서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한다’는 의사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루이를 낙태해야만 했다. 그는 그러나 자신과 아기의 목숨 중 아기를 선택했고 지난 4월14일 1.9㎏ 체중의 루이를 순산했다. 이어 10주 뒤 남편의 팔에 안긴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친구이자 동료인 스펜서 웹스터씨는 “그가 아기와 자신의 목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했는데 아기를 선택했다”며 “용기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정말로 강하고 멋진 여자였다”고 투이라베를 기렸다.
의붓어머니 재키 파투아와씨는 “딸에게는 가족과 보낸 시간이 가장 소중했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더 고통스럽게 느꼈을 것”이라며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이룩한 성취에 대해 우리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베이오브플렌티 출신의 투이라베는 마오리변호사협회의 공동 회장으로 잭슨 리브즈 법률회사에서 환경과 마오리 관련 법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2010년 7월 7일 수요일
암 이겨내고 두 바퀴로 세계일주하다
21일 오후 서울성모병원 3층 회의실에 모인 암환자들과 가족 15명은 푸른 눈의 외국인 남성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프랑스 파리의 중학교 지리교사인 자비에르 쥘리앙(Xavier Jullien·33)씨다. 그는 2003년 고환(睾丸)암 판정을 받았지만 2년여 투병 끝에 이겨내고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 한 암환자가 "고환암을 앓았다는데 1년이나 자전거로 대륙을 횡단하면서 힘들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날씨 때문에 고생했지만 암은 고통이 아니었다"며 웃었다.
쥘리앙씨는 지난해 7월 9일 "자전거 여행으로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며 유라시아 대륙횡단 1만2000㎞ 대장정에 올랐다. 파리를 출발해 이탈리아·터키· 카자흐스탄·중국 등 12개국을 거쳤고, 18일 배편으로 인천에 입항했다. 한국은 그의 자전거 세계 일주가 마침표를 찍는 나라다. 그런데 마중나왔던 지인이 "한국의 암환자들을 만나 조언해 달라"고 말해 이날 병원을 찾았다.
26살 한창 나이에 갑자기 온 암은 그를 절망으로 빠뜨렸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할 만큼 건강하던 청년은 침대에 누워 생사(生死)를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극한(極限)의 여행을 통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졌다. 쥘리앙씨는 "삶의 끝에서 '대륙의 끝'을 생각하게 됐다"며 "지도를 펴놓고 프랑스에서 옆으로 선을 주욱 긋자 한국에 닿았다"고 했다.
대장정은 쉽지 않았다. 하루 평균 6시간, 100㎞씩 페달을 밟았다. 9월에 터키를 지날 때는 자전거가 거푸 고장 났고, 11월 카자흐스탄에선 영하 25도 강추위에 벌벌 떨었다. 지난겨울은 너무 추워서 아예 중국에 체류했다. 그는 "세상 어디에나 따뜻한 사람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자전거를 고쳐주던 터키인 부자가 기억난다"고 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김쌍덕(57·주부)씨는 "나도 3년 전 대장암 수술 후부터 자전거를 꾸준히 타고 있다"며 "외국인 청년과 내 이야기가 닮아 마음이 찡하다"고 했다. 간담회를 마친 쥘리앙씨는 "암이라는 극한 경험만으로도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는 형제애를 느낀다"며 다시 오렌지빛 자전거에 올라 동쪽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그의 대장정은 7월 초 울릉도 동쪽 끝에서 끝난다.
버림받은 오랑우탄과 4세 소녀의 애틋한 우정
| 동물과 사람의 애틋한 우정 에밀리(좌)/리쉬(우) 출처=데일리메일 |
[아시아투데이=김수경 기자] 미국의 한 소녀와 오랑우탄의 끈끈한 우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인터넷 판은 5일(현지시간) 에밀리 블랜드(4)와 오랑우탄 리쉬의 특별한 우정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에밀리는 2008년 아빠를 따라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희귀동물연구소에 갔다가 리쉬를 처음 만났다.
| 리쉬(좌)/에밀리(우) 2년 전 모습 출처=데일리메일 |
당시 태어난 지 갓 1년 된 리쉬는 오랑우탄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했고 자신의 가족으로부터도 외면 받았다. 그 후 리쉬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희귀동물연구소(TIGERS)의 다른 오랑우탄 가족에 입양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에밀리와 리쉬 출처=데일리메일 |
에밀리와 리쉬는 2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함께 세 발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물놀이를 즐기는 등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에밀리의 엄마 소피는 “에밀리에게 리쉬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자 무척 기뻐했다"면서 "에밀리에게 친한 친구의 이름을 물으면 항상 리쉬의 이름을 빼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피는 이어 “에밀리와 리쉬는 함께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며 특히 물놀이를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희귀동물연구소의 바가번 앤틀 박사는 “에밀리와 리쉬의 순수한 우정이 보기 좋다"며 "에밀리가 리쉬와 함께 놀아주고 그를 꼭 안아줄 때 리쉬는 행복해 보였다”고 말했다.
2010년 6월 17일 목요일
<사람들> 일본에 샴푸 2만통 수출한 여대생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3학년 고유선(21.여)씨는 최근 일본 오사카의 유통업체인 산스이통상에 샴푸 2만통을 수출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앞으로 1년 동안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에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조건이다. 고씨와 제조업체 ㈜한방명가는 이번 초도물량을 포함해 최대 6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에서 고씨의 공식 직책은 `마케팅매니저'. 경북 청도에서 한방 성분이 함유된 건강제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직원 10명 안팎의 작은 회사여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
고씨가 산스이통상과 협상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한국무역협회의 소개로 만난 사장에게 거래를 제안하긴 했지만 기존에 생산하던 제품이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을 리가 없었다.
고씨는 일본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우선 투박하고 평범해 보이는 제품 용기의 디자인을 세련되게 바꿨다.
일본에서는 250~300㎖정도의 용량이 가장 잘 팔리지만 고씨는 450㎖짜리를 밀어붙여 대용량 수요를 공략했다. 여러 차례 일본에 드나들며 대형마트와 미용재료 판매점 등에서 치밀하게 시장을 조사한 결과다.
바이어에게는 천연 사과향을 집어넣어 약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다른 업체가 생산하는 한방샴푸 제품과 차별화했다.
바이어가 까다로운 대금결제 조건을 요구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꾸준한 설득 작업 끝에 계약을 성사시켰다.
현재 다른 업체들과 함께 한방차와 삼베, 운동기구 등의 수출계약 협상을 진행 중인 고씨는 최근 대만의 안경테 유통업체와 또 다른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씨는 "그동안 전세계의 바이어들에게 보낸 메일이 1천통가량 되는데 거의 1년 만에 첫 수출계약이 이뤄져 뿌듯하다"며 "계약을 진행하면서 많이 경험하고 배운 만큼 바이어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후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지속적인 수출을 이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두바퀴로 10,500km…“산소같은 모험”
80%가 텐트생활…일하면서 경비도 마련
“떠 나고 싶나요? 그러면 일단 두드리세요”
《경기 고양시에 사는 27세 동갑내기 부부 이성종, 손지현 씨는 2007년 6월∼2008년 7월 호주와 뉴질랜드를, 2009년 3∼10월 아프리카 10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했다. 두 바퀴로 달린 거리가 대략 1만500km에 이른다. 23일 만난 이 부부는 올가을 또 다른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상 반 백수인 남편 이 씨는 섭씨 15도의 따뜻한 봄 날씨에도 목 끝까지 지퍼를 채워 올린 갈색 겨울 재킷 차림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배도 나왔다. 멜빵바지 차림의 부인 손 씨는 여고생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뽀얀 피부의 앳된 얼굴에 해맑은 표정을 지녔다. 야생동물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을 헤집고 사막을 지나온 베테랑 여행가 커플이 버스정류장이나 전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었다.》
①빠른 결단력=이들은 2004년 말 연애를 시작해 결혼까지 222일 걸렸다. 사귄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당시 이 씨는 중앙대 기계공학과 2학년을 다니다 휴학한 뒤 공익근무 중이었고, 손 씨는 고려대 보건대를 갓 졸업하고 영양사로 취직한 상황. “질질 끌면 뭐하느냐”는 게 속전속결로 결혼한 이유다.
②융통성=둘 다 여행을 좋아해 장기여행을 계획했다. 원래 두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생각했으나 가격 대비 질을 생각하니 자전거 여행에 관심이 갔다. 그러자니 여행 기간이 2년은 돼야 할 것 같았다. 중국을 건너 유럽까지 가는 루트로 자료 수집과 장비 구입 등 1년을 준비했다. 하루 10달러로 여행하는 게 목표. 경비 마련에 골머리를 앓던 중 출발 며칠을 앞두고 한 친구에게서 호주는 돈을 벌며 여행도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호떡 뒤집듯 호주로 여행지를 바꿨다.
③친화력=손 씨는 40대 기자에게 “32세? 참, 훈남이시네”라고 했다. 낯선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하는 손 씨의 놀라운 붙임성. 여행 중 거의 80%는 텐트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손 씨의 이런 성격은 큰 도움이 됐다. 방긋 웃는 손 씨에게 현지인들은 기꺼이 자기 집 앞마당을 야영지로 내줬다. 경찰서,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④오기=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끝으로 평범한 삶을 살려고 했다. 이 씨는 대기업 입사원서에 자전거 여행 경력을 부각시켰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손 씨는 “굉장한 경험이 취직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둘은 여행과 생계를 접목해 성공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두 번째 여행지로 위험하다는 아프리카를 택한 것도 그런 이유.
⑤ 생존력=이 씨는 호주 여행을 앞두고 과외, 학원강사, 공사장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여행 경비를 모았다. 잡지사를 무작정 찾아가 여행기 연재를 약속받았고 호주 케언스에 도착한 뒤 3개월 동안 부부는 낮엔 호텔에서 객실 청소를, 밤엔 식당에서 주방 보조와 웨이트리스를 하며 경비를 모았다. 장비업체도 접촉해 아프리카 여행 때는 고가의 자전거도 후원 받았다.
⑥ 낙천성=모험은 불확실성이다. 이들은 기꺼이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손 씨는 강도와 사자가 자주 출몰하는 데다 바닥이 모래라 자전거를 끌고 10시간 넘게 모잠비크 국경을 넘을 때를 여행 중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이 구간만 넘기면 세상에 어려운 건 없을 거라 생각하며 위기를 이겨냈다. 이 씨는 한 달 전쯤부터 모험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예산에 맞게 여행 계획을 짜주고 장비도 구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수입은 아직 별로지만 부부는 “상황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웃었다.
장 기간 모험을 떠나고 싶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들의 조언. △돈 문제일 뿐이라면 밀어붙여라. 새로운 길이 열린다. △현재 일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아 공백기가 있어도 컴백할 수 있도록 대비하라. △아웃도어 활동은 대세다. 모험 자체를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은 널려 있다. △모험으로 얻는 마음의 성장은 몇 년간의 직장 경력과 비교가 안 될 만큼 가치 있다.
25세 태양광 벤처신화, 청와대에 ‘감동의 빛’
無光 패널 국내 첫 개발
올해 매출 100억원 전망
MB “대단하다” 악수 청해
2008년 11월 경기 성남시 수정구 경원대 창업보육센터 내 사무실 한 곳에 새로운 간판이 걸렸다. ‘㈜쏠라사이언스.’ 창업자는 이 대학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인 송성근 씨(25·사진)다. 당시 송 씨는 친환경에너지 분야의 가능성과 자신의 열정만 믿고 ‘나홀로 창업’에 도전했다.
1년 반이 지난 2010년 5월. 송 씨의 회사는 연간 매출 100억 원을 바라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과 중국, 이라크, 몽골 등지에서 대형 수출계약을 잇달아 따내거나 성사단계에 있다. 국내외 기업들이 송 씨 회사와 공동 기술개발을 제안하고 있다. 자본금이 불과 1000만 원에 불과했던 조그만 ‘캠퍼스 기업’이 세계 친환경에너지 업계에 새로운 도전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 국내외 기업, 앞 다퉈 ‘러브콜’
쏠라사이언스가 만드는 대표적인 제품은 태양광 조명시설이다. 태양광 모듈이 태양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따라다니며 빛을 모으는 ‘추적형 가로등’, 일반 전력과 태양광 전력을 교차로 사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이 송 씨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기존 태양광에너지 시장에서 처음이거나 제대로 상용화되지 않았던 기술들이다.
시 장의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창업 3주 만에 6000만 원짜리 규모의 공사를 따냈다. ‘에너지효율이 좋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서 서울 장지지구 등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와 학교, 골프장, 공공시설 등 30여 곳에 시설을 설치했다. 포스코건설, 우미건설 같은 건설사는 쏠라사이언스의 조명시설을 구입해 아파트나 공원 등지에 설치했다.
지난해 3월 미국을 시작으로 이라크, 몽골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달에는 중국, 미국 출신 연구진과 함께 신개념 태양광 패널인 ‘블랙셀’을 개발했다. 블랙셀은 빛 반사가 없는 무광(無光) 패널이다. 빛 반사 문제로 태양광에너지 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웠던 국내 고층빌딩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조만간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기술제휴에 나서는 등 기업들의 러브콜은 계속되고 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은 12명으로 늘었다.
○ 청와대에서도 뜨거운 호응
14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는 제22회 중소기업주간을 맞아 ‘함께 여는 미래, 중소기업인과의 대화’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 기관장, 중소기업인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송 씨도 행사에 참석했다. 가장 나이 어린 참석자였지만 그는 당당히 맨 앞에서 자신의 성공신화를 소개했다. 송 씨는 “어린 나이에 사업가라는 명칭을 갖는 것에 부담도 됐고 걱정도 많았다”며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말씀처럼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이 돼야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송 씨의 연설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 대통령 역시 “정말 잘했다. 대단하다”며 직접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권혁홍 ㈜신대양제지 대표이사 등 중소기업 유공자 46명에게 직접 훈·포장과 표창을 수여했다. 이 과정에서 “1977년인가 금탑산업훈장 받을 때인데 대통령이 주는 줄 알고 갔더니 장관이 대신 줘 섭섭하더라”며 훈·포장을 직접 주는 배경을 설명하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2010년 6월 9일 수요일
"저를 보세요, 꿈을 꾸면 누구나 이룰 수 있죠"
상고 골든벨 소녀 → 대학 진학 → 세계 유명기업 매니저
암 진단받고 73개 인생의 꿈 작성… 5년만에 32개 달성
11년 전 어느 날 방영된 KBS '도전! 골든벨' 여수정보과학고 편을 본 독자라면 머리에 CD를 매달고 나와 자칭 '사이버 요정'이라며 너스레를 떨던 한 소녀를 기억할 것이다. 그 날 그는 실업고 출신으론 처음으로 골든벨까지 울려 화제가 됐지만, 중학교 다닐 때까지 학교 선생님 대다수가 담임하기조차 꺼리던 문제아였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8일 만난 스물 아홉 살의 그는 기자에게 다국적 에너지기업인 로열더치셸 영국지사 윤활유 총괄매니저라는 직함 뒤에 그의 이름 '김수영'석 자가 박힌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꿈의 전도사'로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 아버지의 사업 부도와 극빈층 전락, 반항과 가출의 방황기, 그리고 실업계 학교 진학…. 그는 '상고에서도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도 얻을 수 있다'는 중 3 담임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매달려 고교 3년과 이후 지금까지의 삶을 일궈왔다고 했다. "남이 푼 문제집을 얻어 지우개로 지워가며 한 공부"로 골든벨을 울렸던 그는 2000년 서울의 한 명문대를 전액장학금을 받고 진학했고, 졸업하자마자 금융회사인 골드만 삭스에 취업한다. "간절히 바라던 회사였어요. 그런데 취업 직후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은 겁니다…."
그 때 그는 자신의 꿈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73개의 꿈! "다행히 암은 초기라 수술로 완쾌됐어요.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삶의 행복이 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 그의 꿈 리스트에는 스노보드 배우기, 밸리댄스 공연하기 등 비교적 자잘한 것들부터 아이 입양, 장학재단 설립, 장기 기증 등 크고 장기적인 꿈들도 있다. "제 1순위 꿈이 '인생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살기'예요. 그래서 골드만삭스에서 퇴사한 직후 영국의 한 대학원을 택해 떠났고, 지금 직장을 선택한 겁니다."
그의 꿈 중에는 '삶에 도움이 되는 책 쓰기'도 있다. 지난 4월 그는 자신의 삶의 이력과 함께 꿈의 중요성을 알리는 책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를 출간, 또 하나의 꿈을 이뤄냈다. 휴가를 얻어 잠시 귀국한 그는 얼마 전 여수의 부모님에게 집 사드린 얘기도 했다. "그것도 제 꿈 리스트에 있는 거예요. 돈이 없어 한겨울을 난방도 못 하고 지내시던 어머니가 아직도 '몸이 시리다'고 하시거든요. 볕 잘 드는 예쁜 집을 사드렸어요."
그는 지난 4일 모교인 여수정보과학고를 방문, 은사와 후배들을 만났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꿈을 물어봤는데, 저희 때와는 정말 다른 게 정말 다양한 꿈들을 가슴에 품고 있더군요. 반갑고 흐뭇했어요."그는 9일 다시 고향에 내려가 자신에게 꿈의 씨앗을 심어준 중3때의 은사도 만나고, 후배들에게 꿈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강연할 계획이다. 미리 강연 주제를 귀띔해 달라고 청하자, 꿈꾸듯 아득한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이리 말했다.
"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직접 적어보세요. 내 인생의 계약서를 쓰는 거죠. 꿈에 도전할수록 꿈은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5년 만에 제 73개의 꿈 가운데 32개를 이뤘어요…."
2010년 4월 1일 목요일
학습일기로 서울대 합격한 신현우양
계획은 세우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신현우(19·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1)양은 고교 3년간 학습일기를 쓰며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서울대 합격도 학습일기의 도움이 컸다.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쓴 학습일기를 서울대에 제출하며 수시모집 특기자전형에 지원한 것이다. 신양은 "서울대 지원 당시 '나의 특기는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학습일기를 떠올렸다. 그동안의 공부 내용과 노력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공부한 '자기주도학습'을 특기로 인정받은 것이다.
◆시간 낭비 막고 성취감 높여주는
학습일기
신양은 중3 때 학습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메모지에 하루 한 장씩 공부내용과 시간을
적고, 실천 여부를 점검했다. "학습일기를 쓰면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고, 하루에 얼마만큼 공부했는지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큰
성취감을 얻는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스케줄러를 이용했다.
"저는 계획을 빽빽하게
세운 편이에요. 계획을 너무 느슨하게 세우면, 그만큼 낭비하는 시간이 생기죠. 제가 할 수 있는 공부의 120% 정도를 세웠어요.
계획한 시간의 절반밖에 공부를 못 했다면 △표를 하고, 얼마만큼 못 했는지, 왜 못 했는지를 상세하게 적어두고 다음 계획을 세울
때 참고했어요."
신양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1시간에 문제집 10쪽을 푼다'고 계획했는데, 실제로
해보면 1문제를 푸는 데 30분이 걸린 적도 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일부러 주말에는 계획을 느슨하게 잡았다. "일주일 공부계획
중 5~10% 정도를 지키지 못했는데, 이를 일요일에 보강했다. 이런 습관에 익숙해지니 나중엔 못 지키는 계획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자기 전 다음 날 계획을 세우고, 오늘 언어영역 공부가 부족했다면 다음 날 언어영역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평가 결과를
반영했다. 그날 공부하다가 이해를 못 한 내용, 다시 확인해야 할 내용 등은 포스트잇에 적어 학습일기장에 붙여뒀다. 또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고, 긴 점심·저녁 쉬는 시간에는 수학 문제를 풀며 자투리 시간까지 활용했다.
"
학습일기를 쓰면 버리는 시간이 없어요. 어쩌다 공부할 시간에 친구들과 놀거나 다른 일을 하면 '지금은 수학공부를 할 시간인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계획을 지키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갑자기 계획에 없던 일을 하는 횟수가 점점 줄었어요.
그 대신 학교시험이 끝나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저에게 하루 휴가를 줬죠."
학습일기를 쓰면서 고교 3년간 저절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됐다. 매일 자정에 잠들어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다. "가끔 공부가 잘 된다고 새벽 3시까지 공부하면,
오히려 다음 날 낮 공부에 방해됐다"고 말했다.
"내신을 생각해서라도 수업은 반드시 들어야 해요. 배우는 내용을
수업시간 안에 최대한 이해해야 나중에 다시 공부하는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죠.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 짓하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것은 굉장한 낭비예요. 또 선생님이 설명하시는 대로 필기해둬야 혼자서 공부할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안
풀리는 문제, 해답 보기 전 30분간 혼자 고민하라
신양은 고1 때 공부시간의 50%를 수학에
투자했다. 수학을 정복하지 못하면 상위권 대학에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본개념을 먼저 잡고, 개념을 확인하는 쉬운
문제부터 개념을 응용한 심화문제까지 단계별로 풀었다.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쉬운 문제라도 반드시 풀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념을 알아도 응용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아요. 30분 정도 고민하고, 다양한 풀이법을 연구해야
할 때가 잦죠. 저는 안 풀리는 문제는 최소 30분 정도 혼자 고민한 다음에 해답지를 봤어요. 해답을 보면, 제가 한 발만 더
나아가 생각했으면 풀 수 있는 문제일 때가 잦아요. '난 이렇게 어려운 문제 못 풀어'라고 포기하지 말고, 한 문제를 잡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 그렇게 문제를 풀면 수학이 정말 재미있어져요."
신양은 한 문제집을 세 번씩 반복해 풀었다.
오답노트를 따로 쓰지 않고, 문제집에 틀린 것을 표시해뒀다가 다시 풀었다. "틀린 문제마다 틀린 이유와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틀린 이유도 함께 적었다. 맞힌 문제라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우연히 맞힌 문제는 같이 표시하고 다시 풀었다"고 전했다.
신
양은 탐구영역 공부를 고3 때로 미루지 말라고 조언했다. 인문계열의 경우, 사회탐구 영역이 계속 어려워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사는 서울대 지망생이나 국사를 정말 좋아하는 학생들만 치르기 때문에 좋은 등급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사회탐구 영역을
배우는 1~2학년 때 내신공부를 하면서 함께 정복해 두면 3학년 때 공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공부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 '이건 안 나오겠지' '나중에 다시 공부하자'라고 미루다가 수능 시험일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고교 3년간 낙천적인 마음을 가지세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잖아요. 공부가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괴롭고 힘든 건 마찬가지예요. 그렇다면 차라리 공부를 해서 부모님, 선생님, 친구 등
주변의 격려를 받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옵니다."
2010년 3월 16일 화요일
<문제아서 전문의로 변신한 김호경 씨>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1997년 미국 이민을 기점으로 `김호경'과 `제시 김(30.Jesse Kim)'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호경은 가정불화 때문에 밤마다 겁에 질려 있었고, 사춘기를 성적 부진아와 문제아, 반항아로 낙인 찍힌 채 보냈다. 끝내 고교 1학년 때 자퇴를 했고, 1년 6개월을 골방에 숨어 살며 꿈도 희망도 없이 세월을 보냈다.
1997년 어느 날,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었던 그에게 고모를 통한 미국 이민의 기회가 찾아왔다. 로스앤젤레스에 첫발을 디딘 김호경은 주위의 어떤 도움도 거부하고 독립을 선언하며 시애틀로 떠났다. `제시 김'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영어 한 마디 못하고, 땡전 한푼도 없는 제시 김의 미국 생활은 가시 발길이었다. 그러나 잡초 뽑기, 아르바이트, 조교 업무 등으로 고된 노동을 병행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공부했다. 세리토스 칼리지를 4.0만점으로 졸업하면서 `올해의 학생상'을 받았고, 이후 UCLA에 편입해 예비 의대생이 됐다.
의대 병리학부 연구실 보조로 일하며 인간 세포를 배양하고 연구논문 집필에도 참여한 그는 워싱턴대로부터 연구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전액 장학생으로 와 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현장의사의 길을 선택해 남가주대(USC) 의대에 들어갔다. 의대 졸업 후 인턴 1년차 때 인턴으로선 전례 없이 미국 의사 면허 국가고시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응급의학 전문의 과정을 밟은 그는 전미 응급의학 임상 국가고시에서 3년 연속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존스홉킨스에서 가장 촉망받는 의사로 주목받았다.
그는 현재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과 세인트 프란시스 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김 씨는 16일 미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한인 청소년들이 가난하거나 환경이 나쁘다고 좌절하지 말고, 열정과 노력으로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순간순간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을 뿐"이라며 "한인 청소년들이 환경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나를 보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응급실에서 위독한 생명을 살리는 그는 지난해 말 자서전 `내 시련의 이름은 자유다'(랜덤하우스)를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기회는 주어진다'는 분명한 신념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흔들림없이 나아갔습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의 도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문제아에서 워싱턴대 전문의로 변신한 제시 김 씨<<미주한국일보 제공>>
[펌]양은모, 양은성 공신 남매 이야기
양은모(21), 양은성(19) 남매는 영재들이 모인 민사고에서도 공부 잘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수재로 꼽혔다. 2년 전 민사고를 졸업해 현재 스탠퍼드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양은모씨는 고교 재학 당시 AP(대학과목선이수제) 성적우수로 인터내셔널 칼리지보드에서 주는 최우수상을 받았을 만큼 성적이 좋았다. 삼성장학생으로 선발돼 학비와 체류비 일체를 지원받고 있다. 양은성양 역시 올해 모든 과목 A학점으로 전체 1등을 기록하며 졸업했다. 올해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그는 예일대를 수시(Early)로 합격한 상태다. 이들이 유명한 공신남매가 되기까지는 본인들의 노력 못지않게 어머니 이미경(45)씨의 공도 한몫했다. 이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두 아이 모두 네 살쯤 한글을 깨쳤는데 그 뒤로부터는 손에서 책을 안 놓을 정도로 책에 빠졌어요.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범상치 않다고 여겼죠. 뛰어난 잠재력을 살려주기 위해 고심하고 행동으로 옮긴 결과 두 아이 모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어요."
◆
시기에 맞게 엄마 역할을 바꾸다
대학에서 교육심리를 전공한 이씨는 자녀 교육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서는 열 일을 제쳐놓고 자녀교육 강의에 찾아다닐 만큼 열성이었다. 자녀를 잘 지도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강의를 들으면서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존중하는 방법, 있는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는 법 등을 배웠고 두 아이를 대할 때마다 배운 것을 늘 떠올렸다"고 말했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이씨는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이길 자처했다. 늘 아이들과 함께 다니며 즐기기를 좋아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주고자 전시회나 박물관, 공연장에 함께 다녔고 종종 여행도 떠났다. 특히 은모군이 초등 5학년, 은성양이 초등
3학년 무렵 캐나다로 건너가 1년 7개월간 살았을 때는 한시도 아이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휴일이면 늘 도서관에 함께 다니며
책을 읽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길 좋아했지만 단 한 번도 공부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은성양의 얘기다.
"부모님은
한 번도 성적표를 보여달라거나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성적에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셨죠. 초등 때까지는 공부보다는
가족 간의 추억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비뇨기과 전문의이신 아버지가 지방에서 하는 학회를 참석할 때면 저랑
오빠는 학교를 빠져서라도 온 가족이 여행을 함께 떠났지요"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대치동에 터를 잡고 나서는 이씨의
역할이 철저히 달라졌다. 아이들의 학습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은모가 어느 날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어요.
선행학습을 한 덕분에 실력이 좋은 친구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때까지 사교육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기에 은모가 받는
위기의식이 예상보다 컸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지요. 상황이 달라진 만큼 적응할 때까지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자고 결심했어요.
그때부터 두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수소문하고 아이 스케줄에 맞게 로드매니저 역할을 했죠. 아이에게 필요한 것과 부족한 부분을 미리
살피면서 보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심리적인 안정을 주고자 봉사활동도 함께 했다. 방학 때면 캄보디아, 네팔 등지로
온가족이 의료봉사를 떠났다. 은성양은 "오지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두 아이가 민사고에 입학하고 나서는 격려자로 변신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방학 때마다
집에 돌아올 때면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자 배려했다. 학기중에는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휴식을
느끼게 해주려는 의도였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해줬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학습력이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마음이 안정돼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고 여겼지요.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며, 아이들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고 열심히 나아가면
곁에서 응원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나야 해요. 재촉하거나 채근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죠."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게 하라.
이씨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사교육 일 번지' 대치동에 정착했을 때로 기억한다.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 때문에 적지 않이 마음 고생을 한 남매를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주변의 온갖 사교육 정보들을
접하면서 혼란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씨는 한발 물러나 여유롭게 행동했다.
"대치동에 오면 학원이 많은
데다 갖가지 사교육을 시키는 엄마들이 적지 않아 부화뇌동하기 쉽죠. 부모의 욕심 때문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급함을 버리고 저보다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했지요"
학원을 선택할 때는 철저히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했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라고 입소문이 났다고 해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보내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한 곳을 오래
보냈다. 또한 사교육을 많이 시키지도 않았다. 부족한 과목에 한해 몇 과목만 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혼자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학원 선택을 스스로 했기에 부담이 없었다고 말하는 은성양은
"웬만한 대치동 아이들이라면 응시하는 올림피아드 준비도 특별히 하지 않아 여유시간이 많았다. 남는 시간을 오로지 학교 공부에
투자한 결과 최상위권 내신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사고를 지원한 것도 전적으로 아이들의 의사였다.
은모씨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민사고에서 열린 캠프에 참가하고 나서 민사고 진학을 꿈꿨던 것. 목표를 향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를 이씨는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줬다. 오빠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은성양 역시 일찍부터 민사고를 목표로 공부에
매진했다.
이씨는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엄마부터 중심을 잡아야 한다. 아이를 귀하게
여기고 의사를 존중해줘라"고 충고했다.
-출처 : 방종임 맛있는공부 기자 bangji@chosun.com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엄마, 내 노래 듣고 암 이겨내세요” 열한살 섬소년 열창에 바다도 울다
완도 모황도서 단 세식구 생활
아빠와 배타고 통학하며 노래
TV쇼 출연후 지역 스타로
열한 살 소년은 엄마한테 왜 오른쪽 가슴이 없는지를 한동안 몰랐다. 소년이 엄마가 유방암 때문에 한쪽 가슴을 잃었다는 것을 안 것은 3년 전이었다.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안 소년은 엄마 가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엄마의 병이 꼭 나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조기흠 군(11)은 전남 완도군 신지면 모황도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 완도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 떨어진 모황도는 면적이 0.13km²로 축구장 18개 크기의 작은 섬이다. 이 섬에는 기흠이네 식구밖에 없다. 한때 7가구가 살았으나 모두 떠났다.
15일 오후 신지면 가인나루터. 기흠이는 방파제 기둥에 묶인 밧줄을 잽싸게 풀고 3t짜리 배에 올라탔다. 배가 나루터를 빠져나오자 기흠이는 아버지 조양배 씨(57)를 대신해 키를 잡았다. 겨울바람이 매서웠지만 기흠이의 운전 솜씨는 여느 뱃사람 못지않았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모황도. 기흠이는 책가방을 던져놓고 어머니 최숙자 씨(56)의 손을 이끌었다. 마이크를 들고 포즈를 취하더니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기흠이는 “엄마 제가 마련한 퇴원 기념 콘서트예요. 오랜만에 노래 들으니까 좋지”라며 웃었다. 최 씨는 배에서 넘어지면서 왼쪽 발목뼈를 다쳐 한 달 보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 퇴원했다.
기흠이는 모황도에서 5km 떨어진 신지동초등학교에 다닌다. 전교생 62명 가운데 배로 통학하는 유일한 학생이다. 기흠이는 학교에서 ‘스타킹’으로 통한다. 올해 SBS TV 인기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3차례 연속 우승한 뒤 얻은 별명이다.
1월 설날 특집 때 처음 출연한 기흠이는 나훈아의 ‘어매’를 애절하게 불러 방청객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3연승에 성공해 받은 500만 원은 엄마 병원비와 약값으로 모두 썼다. 기흠이는 7일 스타킹 왕중왕전에 출연해 가수 태진아, 박현빈, 카라 등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태진아 씨는 녹화를 마친 뒤 “음을 소화하는 능력이 탁월해 잘 다듬으면 큰 가수가 될 재목”이라며 “무엇보다 효심이 지극한 아이여서 정이 더 간다”며 선뜻 200만 원을 건넸다.
기흠이가 트로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낚시꾼들이 섬에 남겨놓고 간 테이프를 들으면서부터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친구 없이 지내는 기흠이의 유일한 벗이 됐다. 뒷산의 염소와 사슴을 찾아다니거나 달래와 쑥을 캐며 트로트를 흥얼거리는 게 놀이이자 공부였다.
매일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통학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고스란히 실력으로 이어졌다. ‘트로트 신동’이란 소문이 나면서 면민의 날이나 지역축제 등 각종 행사에 초청받는 단골손님이 됐다. 기흠이는 10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정식 가수가 됐다. 후원자도 생겼다. 인근 금일도에 사는 전직 가수 김성룡 씨(64)가 ‘매니저’를 자처하고 나서 틈나는 대로 노래를 가르치고 행사 때도 함께 다닌다.
기흠이 아버지는 “태진아 씨가 준 격려금으로 중고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했더니 기흠이가 집 수리비에 보태 쓰라고 해 눈물이 났다”며 “엄마 약을 꼭 챙겨주고 낚시로 잡은 감성돔을 담임선생님에게 갖다드릴 정도로 대견스러운 아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얼른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섬에서 엄마, 아빠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외딴섬에서 들꽃처럼 사는 기흠이의 소박한 꿈이다.
에이즈 환자 간병하는 에이즈 감염자
음식점 요리사였던 5년전 에이즈 판정받고 퇴직 방황의 시간 보내다 같은 처지의 환자 간병인으로 "헤어진 아들 생각 자꾸나" "제가 아들 노릇 할게요" "김민철님, 정신 차리세요! 간호사님, 여기 좀 와보세요! 빨리요 빨리!" 한밤중 병상을 돌며 잠든 환자들을 살피던 이형수(35ㆍ가명)씨의 절박한 외침이 어둠을 흔들었다. 환자 김민철(56ㆍ가명)씨가 눈을 부릅뜬 채 코를 골고 있었다. 당뇨병으로 인한 저혈당 쇼크였다. 벌써 뇌손상을 입었으면 어쩌나, 간호사가 달려올 때까지 이씨는 발을 동동 굴렀다. 간호사가 김씨를 억지로 깨워 꿀물을 먹이자 김씨는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다. 지난 10월 어느 날 새벽 경기도의 한 에이즈 환자 전용 호스피스 시설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던 지난 1일 병동 휴게실 소파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그날 일을 화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 이 선생 아녔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늘 고마워요." "별 말씀을요. 뉴스 보니까 완치제가 곧 나올 것 같다고 하네요. 절대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어느새 손을 꼭 맞잡은 두 사람은 부자지간처럼 다정했다. 국내에서 하나뿐인 에이즈 환자 간병 시설인 이곳엔 15명의 환자가 입소해 있다. 그중 여섯은 종일 침대에 누워지내야 할 만큼 위중한 상태이고, 나머지 환자들도 대부분 김씨처럼 에이즈뿐 아니라 각종 질환을 안고 사는 중증 환자다. 이씨를 비롯해 이들을 돌보는 간병인 6명은 모두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남성이다. 감염자는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선 환자와 같지만, 질병을 앓고 있지 않다는 점에선 정상인과 다름없다. 김씨는 2007년 3월 이곳에 왔다. 플라스틱 제조 공장을 경영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인생은 2001년 말 사업 실패를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빚더미에 앉으며 부인과 이혼했고, 당뇨가 악화되면서 손발 마비와 함께 시력을 거의 잃어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눈이 안 보이고 거동이 힘든 건 참을 수 있는데, 가족 없이 혼자 병마와 싸워야 한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당뇨 합병증을 치료하려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김씨는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50여년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선고를 받는 순간 김씨는 외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올해 서른이 됐어요.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는 전혀 몰라요. 그애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혼자 울면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세상과 외떨어진 이곳에서 동병상련을 나누면서 김씨는 조금씩 마음을 추슬렀다. 특히 지난해 11월 간병인으로 온 이씨를 만난 뒤론 살아볼 의욕이 불끈 솟았다. 싹싹하고 활기찬 이씨의 수발을 받을 때마다 김씨는 마치 아들을 곁에 둔 것처럼 느껴진다. 식사를 마치고 이씨의 부축을 받으며 20분 가량 산책하는 일이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김씨는 "올해 초 보름 동안 다른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씨가 어찌나 보고 싶던지 간호사에게 빨리 보내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이씨도 김씨를 곡진히 대한다. 간식도 먼저 챙겨주고, 식사 마치길 기다렸다가 산책 가자며 팔짱을 낀다. 이씨는 "워낙 조용하고 잘 움직이지 않으셔서 자주 살피게 된다"며 "지난번 쇼크 후엔 새벽에 한 번씩 깨워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동료 2명과 한 조를 이뤄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씩 2교대로 일한다. 그가 모든 환자에게 일일이 건네는 아침 인사는 "용기를 가지세요". 김씨는 "이씨의 아침 인사를 들을 때마다 빨리 회복하고 싶다는 의지가 솟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씨는 "환자들이야말로 날마다 내게 희망을 불어넣는 은인"이라고 말한다.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씨는 인생 막장에 몰린 느낌이었다. 서울의 대형 음식점 요리사였던 그는 2004년 5월 날벼락 같은 HIV 감염 판정을 받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4년 동안 거의 실업자로 지내다가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주선으로 100시간 교육을 받고 간병인이 됐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아 감염인에게 돌아온 자리'라는 자조 섞인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보여주는 굳센 소생 의지가 기어코 이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지난해 말 입소한 환자가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가 돌봤던 중증 환자가 동료 간병인이 됐다. "고통 속에서도 치료와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나약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죠. 나도 반드시 회복될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이씨는 매주 두 번 이상 헬스클럽에 가고, 의학서에서 익힌 식이요법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 이씨에게 간병은 생계 수단이기에 앞서 생명의 회복을 돕는 봉사다. 그는 "스스로가 감염자이기 때문에 환자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분들이 희망을 버리지 茄돈?가족처럼 헌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손가정 어린이, 노숙자 같은 이들도 돕고 싶다"고도 했다. 소파에 오래 앉아있던 두 사람이 일어섰다. "이 선생을 보면 7년 전 헤어진 아들 생각이 자꾸 나요." "제가 아들 노릇 잘 할게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말없이, 따뜻한 시선을 주고 받는 두 사람. 무척 닮아 보였다. |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규석이네 열 식구 '힘겨운 겨울나기'
◈학원을 다녀야 갈 수 있는 학교
곳곳에 곰팡이가 가득한 오래된 집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까지 거리가 멀다는 또 하나의 단점이 있다. 규석이네는 자동차가 없어 학교를 보낼 수가 없는 상황.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학원에 등록해 학원 승합차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규석이와 세 아이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학원을 다니고 있다.
아이들을 제외하고 여섯 명의 어른이 있는데도 형편이 어려운 것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규석이의 작은 아버지와 할머니 둘 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어른들은 모두 병이나 장애를 갖고 있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엄마는 후두암, 아빠는 다리 잃어
규석이의 어머니 구영희(35) 씨는 3년 전 후두암을 진단받고 아직까지 투병 중이다. 식구가 많다보니 영희 씨의 약해진 체력으로는 집안일도 벅찰 정도다. 규석이의 할아버지 이범수(72) 씨는 지난해 봄, 오토바이에 다리를 치어 지체장애 3급의 장애인이 됐다.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통증을 호소하고 있고 집 앞 텃밭 기르는 일만 겨우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이 집의 가장이었던 규석이의 아버지 이대종(43) 씨도 올해 여름, 교통사고로 다리 한 쪽을 잃게 됐다. 야근을 마치고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을 하다 자동차와 충돌했고, 사고난 지 열흘 만에 다리를 절단하게 됐다. 대종 씨의 과실이 커서 12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됐다. 이렇게 대종 씨마저 장애인이 되고 나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수학경시대회 4년 연속 수상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기특하게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쁨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규석이는 특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도내 수학경시대회에서 4년 연속 대상을 받았을 정도. 동생 규찬이(8)도 금상을 받았을 정도로 형을 따라 공부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담임선생님은 “머리가 좋은 아이들인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혼란스러워하는 게 보인다”며 미래에 대해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앞으로 의족에 의지해 걸을 수 있는 정도만 되면 무슨 일이든지 해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싶다"는 대종 씨.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아이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만은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高2가 교수-대학원생과 겨뤄 국제에세이대회 3위
민족사관고 재학생이 청소년 극지과학자연합(APECS·The Association of Polar Early Career Scientists)이 주관한 ‘국제 극지과학정책 에세이대회’에서 입상했다. 한국극지연구진흥회는 남극조약 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에세이대회 수상자인 김재희 양(18·민족사관고 국제계열 2학년·사진)에게 28일 항공료 등 장학금을 전달했다. 한국극지연구진흥회는 이날 국제적 안목을 지닌 국가미래 지도자 육성 차원에서 김 양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김 양은 29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개최되는 ‘남극정상회의’에 초청돼 에세이를 발표한다. 김 양은 에세이에서 남극의 극한미생물에 관한 특허와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한 가칭 ‘생물자원탐사를 위한 남극 과학연구 기구’ 설립을 주장했다. 그는 “학교 환경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남극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며 “남극에서 자원 및 상업적 개발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앞으로 남극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양은 에세이를 제출할 때 환경 전문 변호사를 장래 희망으로 썼다고 한다. 한국극지연구진흥회 윤석순 회장은 “지구환경문제가 국제 이슈로 대두되면서 남극, 북극에 대한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며 “김 양은 세계 각국의 대학생, 대학원생 및 교수까지 응모한 이 대회에서 당당히 3위로 입상했다. 3위지만 1위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박사과정 학생이고 2위는 호주의 대학생이어서 김 양의 수상은 한국의 일대 쾌거”라고 말했다. ---------------------------------------------------------------- MK 생각. 꿈을 먹는 자는 인생을 포만하게 하는 자. "부러움"이라는 단어는 나를 작게 만들지만 "존경"이란 단어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 |
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無스펙 대학생의 대기업 취업 스토리”
바늘구멍보다 어렵다는 취업.
그런데 흔한 공인영어점수도 없이, 대학 졸업도 1년이나 남겨둔 대학생이 덜컥 유통업계 2위의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 출신도 아니고, 국가 공인 자격증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어떻게 취직했을까?
無 스펙(*스펙 : 취업시장의 은어로 토익점수, 출신대학 등을 이야기함) 대학생의 대기업 취업 스토리를 들어봤다.
소문을 듣고 찾아낸 주인공은 바로 정해영(24살, 대진대학교 행정학 전공) 씨. 정 씨는 지난 23일로 삼성테스코의 정식 직원이 됐다.‘난다 긴다’하는 취업생들을 물리치고 바늘구멍을 뚫은 것이다. 다짜고짜 취업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정 씨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군대 습관 덕분에”가 그 대답이었다.
궁금증이 맴돌았다. 우스갯소리로 보통 군대 경험은 취업의 주적(主敵)이라고 하지 않던가.
시간은 2007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군에서 갓 제대한 정 씨는 일찍 일어나던 군대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아르바이트직에 지원했다.
정말 군대에서 생긴 습관 때문이었을까? 정 씨는 그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무실로 오전 7시 정시에 알람시계처럼 출근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시각이다. 출근 뿐 아니라 근무태도에서도 정 씨는 유독 성실하다고 주변에서 입을 모은다.
같은 사무실에 일하는 삼성테스코 강정현 과장은 “정 씨가 입사 이후 2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7시에 출근했다”며 “처음에는 설마설마 하다가 나중에 사무실 직원들이 정 씨의 성실함에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출근 시간 뿐 아니라 근무 시간의 성실함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청년 같지 않은 성실함이 정 씨의 무기였던 것이다.
2년간 꾸준히 이어진 정 씨의 성실함, 결국 삼성테스코에서는 그 보답으로 정 씨를 정규직으로 정식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삼성테스코에는 아르바이트직원 가운데 근무 기간이 1년 이상인 우수 직원을 정규직으로 뽑는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삼성테스코에서는 1년에 100명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그러나 일선 영업직이 아니 사무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경우는 처음으로, 삼성테스코에서도 파격이다. 처음에 인사팀은 정 씨의 채용에 난색을 표명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정 씨 채용을 적극 지원했다는 삼성테스코 PR사회공헌부문장 설도원 전무는 “대학졸업을 1년이나 남겨둔 정 씨에게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지만, 직장생활에서는 성실한 자세가 가장 중요한데 정 씨는 그 자세를 갖췄기 때문에 결국 채용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설 전무는 “삼성테스코는 앞으로도 인재를 얻기 위해 보다 다양한 채용제도를 활용할 계획이며, 각 영업망을 통해 7만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무스펙으로 취업한 정 씨의 취업스토리,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그 이야기 속에 요즘 젊은이들이 놓치고 있는 취업문을 여는 황금의 열쇠가 있는 것 아닐까.
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2009년 11월 26일 목요일
길 가다 '실례한' 할아버지, 어떻게 됐을까
주말이라서 친구들과 포항시 흥해읍 쪽에 있는 P라는 목욕탕에 갔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몸을 닦고 선풍기 앞에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을 때였다.
목욕탕에서 남의 몸을 씻어주는 분과 표를 받는 안내원이 연세가 퍽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곁에서 옷을 입히며 "할아버지 존함이 무엇이냐"고 여러 번 물었다. 대답이 없으시자 다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가 성함을 대답하셨는지 모르지만 또 할머니 성함을 묻고 전화번호까지 물으면서 지갑을 할아버지 윗주머니에 밀어 넣고 있었다.
홀 안에는 그들과 할아버지, 그리고 고개 숙여 발톱을 깎는 사람과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슬쩍슬쩍 그 광경을 보았다.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나쁜 사람들이 할아버지 돈을 훔치고 할아버지의 집 사정을 알아서 무슨 사기를 치려하는구나"였다.
선풍기 바람을 벗어나서 그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할아버지는 윗옷은 입었고 아랫도리는 벗은 채였다. 곁에 있는 한 사람은 바지가 없어 큰 일이라면서 '동동'거리고 있었고 한 사람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마친 사람이 상대편 사람을 건너다보면서 할머니에게 연락이 되었다면서 불안한 표정에서 벗어나 스포츠센터에서 반바지라도 가져오라고 했다.
그 때까지도 분명히 나쁜 사람들 짓거리로 생각되어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하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비닐봉지 안 젖은 바지를 보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길을 가다가 실례하신 모양인데, 근처 목욕탕이 보여 찾아오신 것 같아요. 여기를 찾아 오셨을 때 냄새가 지독하게 나서 가까이 가보니 연세가 많으신 것 같고 말씀도 제대로 못하고 서있기만 하셨어요. 당황해 하다가 옷을 벗겨 빨고 몸을 씻겨 나왔지만 당장 입고 갈 바지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우선 스포츠센터용 반바지를 입혀 할머니가 오시면 모셔다 드릴 생각입니다."
그의 이야기에 조금 전 나의 잘못된 생각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옷을 가지러 갔던 사람이 옷을 가져 왔지만 작아서 큰일이란다. 그러면서 '제일 큰 것을 골라 와야겠다'면서 쫓아가더니 다시 가져온 옷을 입힌 후에야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무심한 듯 발톱을 자르던 사람도 고개를 들고 나와 함께 웃으며 찬사의 말을 했다.
정말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을 받는 일도 아닌데 목욕탕에서 남의 몸을 씻어주는 사람, 가난하지만 마음씨만은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고 넉넉한 부자가 아닌가.
요즈음 시골 노인네들을 찾아가서 밀가루를 만병통치약처럼 속여 팔아 돈을 챙기는 악덕 상인들, 전화로 사기 쳐서 노인네들 주머니를 몽땅 터는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두 사람의 앞날에 늘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