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에이즈 환자 간병하는 에이즈 감염자

"포기 마요" 희망 살아난 동병상련 병실
음식점 요리사였던 5년전 에이즈 판정받고 퇴직
방황의 시간 보내다 같은 처지의 환자 간병인으로
"헤어진 아들 생각 자꾸나" "제가 아들 노릇 할게요"

"김민철님, 정신 차리세요! 간호사님, 여기 좀 와보세요! 빨리요 빨리!"

한밤중 병상을 돌며 잠든 환자들을 살피던 이형수(35ㆍ가명)씨의 절박한 외침이 어둠을 흔들었다. 환자 김민철(56ㆍ가명)씨가 눈을 부릅뜬 채 코를 골고 있었다. 당뇨병으로 인한 저혈당 쇼크였다. 벌써 뇌손상을 입었으면 어쩌나, 간호사가 달려올 때까지 이씨는 발을 동동 굴렀다.

간호사가 김씨를 억지로 깨워 꿀물을 먹이자 김씨는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다. 지난 10월 어느 날 새벽 경기도의 한 에이즈 환자 전용 호스피스 시설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던 지난 1일 병동 휴게실 소파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그날 일을 화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 이 선생 아녔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늘 고마워요." "별 말씀을요. 뉴스 보니까 완치제가 곧 나올 것 같다고 하네요. 절대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어느새 손을 꼭 맞잡은 두 사람은 부자지간처럼 다정했다.

국내에서 하나뿐인 에이즈 환자 간병 시설인 이곳엔 15명의 환자가 입소해 있다. 그중 여섯은 종일 침대에 누워지내야 할 만큼 위중한 상태이고, 나머지 환자들도 대부분 김씨처럼 에이즈뿐 아니라 각종 질환을 안고 사는 중증 환자다.

이씨를 비롯해 이들을 돌보는 간병인 6명은 모두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남성이다. 감염자는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선 환자와 같지만, 질병을 앓고 있지 않다는 점에선 정상인과 다름없다.

김씨는 2007년 3월 이곳에 왔다. 플라스틱 제조 공장을 경영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인생은 2001년 말 사업 실패를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빚더미에 앉으며 부인과 이혼했고, 당뇨가 악화되면서 손발 마비와 함께 시력을 거의 잃어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눈이 안 보이고 거동이 힘든 건 참을 수 있는데, 가족 없이 혼자 병마와 싸워야 한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당뇨 합병증을 치료하려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김씨는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50여년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선고를 받는 순간 김씨는 외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올해 서른이 됐어요.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는 전혀 몰라요. 그애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혼자 울면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세상과 외떨어진 이곳에서 동병상련을 나누면서 김씨는 조금씩 마음을 추슬렀다. 특히 지난해 11월 간병인으로 온 이씨를 만난 뒤론 살아볼 의욕이 불끈 솟았다. 싹싹하고 활기찬 이씨의 수발을 받을 때마다 김씨는 마치 아들을 곁에 둔 것처럼 느껴진다.

식사를 마치고 이씨의 부축을 받으며 20분 가량 산책하는 일이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김씨는 "올해 초 보름 동안 다른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씨가 어찌나 보고 싶던지 간호사에게 빨리 보내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이씨도 김씨를 곡진히 대한다. 간식도 먼저 챙겨주고, 식사 마치길 기다렸다가 산책 가자며 팔짱을 낀다. 이씨는 "워낙 조용하고 잘 움직이지 않으셔서 자주 살피게 된다"며 "지난번 쇼크 후엔 새벽에 한 번씩 깨워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동료 2명과 한 조를 이뤄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씩 2교대로 일한다. 그가 모든 환자에게 일일이 건네는 아침 인사는 "용기를 가지세요". 김씨는 "이씨의 아침 인사를 들을 때마다 빨리 회복하고 싶다는 의지가 솟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씨는 "환자들이야말로 날마다 내게 희망을 불어넣는 은인"이라고 말한다.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씨는 인생 막장에 몰린 느낌이었다. 서울의 대형 음식점 요리사였던 그는 2004년 5월 날벼락 같은 HIV 감염 판정을 받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4년 동안 거의 실업자로 지내다가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주선으로 100시간 교육을 받고 간병인이 됐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아 감염인에게 돌아온 자리'라는 자조 섞인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보여주는 굳센 소생 의지가 기어코 이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지난해 말 입소한 환자가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가 돌봤던 중증 환자가 동료 간병인이 됐다.

"고통 속에서도 치료와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나약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죠. 나도 반드시 회복될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이씨는 매주 두 번 이상 헬스클럽에 가고, 의학서에서 익힌 식이요법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 이씨에게 간병은 생계 수단이기에 앞서 생명의 회복을 돕는 봉사다. 그는 "스스로가 감염자이기 때문에 환자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분들이 희망을 버리지 茄돈?가족처럼 헌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손가정 어린이, 노숙자 같은 이들도 돕고 싶다"고도 했다.

소파에 오래 앉아있던 두 사람이 일어섰다. "이 선생을 보면 7년 전 헤어진 아들 생각이 자꾸 나요." "제가 아들 노릇 잘 할게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말없이, 따뜻한 시선을 주고 받는 두 사람. 무척 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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